‘더 캡슐’의 낭만

2019-12-3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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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더 캡슐’ 정승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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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많은 직장인이 업무에 치여, 또는 헛헛함에 자신의 일을 꿈꾼다. ‘더 캡슐’의 호스트 정승호 역시 원래는 보통의 직장인이었고 사정에 의해 희망퇴직을 권하는 회사에서 미래를 찾을 수 없었다. 밖에 나와 무얼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는 주변을 살폈다. 동대문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의 오피스텔에서 살던 그에 눈엔 쇼핑몰 봉투를 들고 다니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들어왔다.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여행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을 운영하고 싶었다. 동대문 일대의 숙소를 일일이 발품 팔아 확인하던 그의 노력은 게스트하우스에 관심 있는 파트너를 만나 2016년 ‘서울달빛’이란 게스트하우스로 결실을 맺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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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끗하게 관리된 캡슐호텔 내부.세계 일주한 친구들한테 묵었던 숙소 사진을 요청하기도 하며 꽤 오랜 시간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부족한 부분이나 당황스러운 순간은 쉴 새 없이 등장했다. 요우커들이 버리고 간 쇼핑백, 쓰레기들로 어지러워진 방을 일주일에 몇 번씩 마주해야 하고,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청하는 여행자도 있었다. 종종 여행자들을 매일 만날 수 있으니 그의 일을 낭만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. “배낭여행,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가볍게 떠나는 여행은 저도 좋아해요. 하지만 여행자로서 여행하는 것과 여행자를 맞이하는 건 달라요. 맛있는 음식 먹기를 좋아하는 것과 식당을 운영하는 게 다른 것처럼요. 여행자를 계속 맞이하면서 감정이 자주 새롭게 환기되는 게 장점이에요. 하지만 시설을 관리하고 청소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백그라운드의 일 때문에 무작정 시작하기엔 어렵죠.”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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층마다 6~8명의 투숙객이 이용한다.그럼에도 꼼꼼한 성격 덕분에 2년 전 장충동에 두 번째 게스트하우스를, 올해 3월에는 퇴계로에 캡슐호텔을 열었다. “캡슐호텔이 서울에 4개밖에 없어요. 아무래도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가 공간만 있으면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진입 장벽이 낮아요. 숙박요금도 많이 내려갔고요. 가격은 적게 받으면서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어요. 어메니티나 조식 같은 부가적인 서비스를 모두 뺐죠. 공용공간이 없는 걸 손님들이 다들 아쉬워하시더라고요. 다음에 캡슐호텔을 다시 열 수 있게 된다면 심플하지만 편안한 라운지를 만들고 싶어요.” 호텔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한다. 더 길게 운영할 수도 있지만 스태프들의 개인 시간이 보장될 때 더 좋은 서비스나 환대도 가능한 법이다. 체크아웃과 청소로 바쁜 오후가 지나면 저녁은 조금 한가하다. 그 시간을 활용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느낀 바를 글로 쓰곤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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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인 공간이 밀접하게 붙어 있는 만큼 이어플러그를 무료로 제공한다.“서울에선 강원, 제주처럼 특색 있는 호스텔,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아요, 대신 어딜 가고 싶다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도와줘요. 평창올림픽 때 슬로베니아에서 온 선수들이 묵었는데 함께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됐어요. 유럽에 돌아가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제가 슬로베니아로 여행을 갔을 때 그 친구들이 4일이나 가이드를 해주었어요.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거죠.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인연을 계속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매력이에요.”
에디터
유승현
사진
조수민, 임가희